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강추전시회]83세 조경가 정영선 개인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by Hessed헤세드 2024. 5. 4.

★삼청동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조경가 정영선 개인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정영선 조경가

“땅을 돌보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개막식 개최/2024.4.5

※정영선 조경가가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개막식에서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개막식이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교육동에서 개최됐다. 이날 개막식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전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60여 개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정영선 조경가의 아카이브 대부분이

최초로 공개되며 파스텔, 연필, 수채화 그림, 청사진, 설계도면, 모형, 사진, 영상 등

각종 기록자료 500여 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정영선 조경가는 “일제강점기, 6.25 등 나라가 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새롭게 도약하게 된

시점에서 국가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환경대학원을 설립해 지도자를 양성했고,

이를 통해 고속도로, 국공립공원, 주요 문화재 등 수없이 많은 일을 하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직접 고속도로 식재 스케치를 했고,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이었던

오휘영 교수께서는 그 많은 일과 문제를 해결하며, 저희들을 기르셔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은사님의 노고는 멋진 열매가 되고 싹이 되어서 조국 강산이 나날이 좋아질 것이고,

앞으로도 점점 더 발전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유퀴즈 출연- 2024년 5월1일

[인터뷰기사]

4월 17일에는 5년간 정씨의 사계절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도 개봉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친숙하고도 아름다운 공간들로 채워진 영상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미술관 전시장에서, 영화 시사회에서 두 번에 걸쳐 정씨를 만나 ‘자연과 사람 사이 다리 역할을 하는 조경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제1호 졸업생(1975년)이십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할 게 없어서 ‘주부생활’ 기자를 했어요. 그러다 늦게 대학원이 생겨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죠. 아주 어릴 때부터 꽃과 나무를 좋아했어요. 아버님이 기독교 계통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학교 안에 선교사들이 만든 정원이 있었고 아버지도 사택 정원을 직접 가꾸셨죠.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꽃 심고, 물 주고, 돌 나르고, 낙엽 치우는 일이 내 몫이었어요.”
영화에서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사과꽃 흩날리는 풍경이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고 회상하시던데.
“대구에서 멀지 않은 경산의 낮은 산 밑에 과수원이 있었어요. 새들이 와서 사과를 따 먹으려고 하면 할아버지 방에서 줄을 당겨 방울 소리를 울리게 했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아서 내 영감의 원천이자 꿈에도 못 잊는 곳이죠. 그렇게 토속적인 시골 정원과 서양식 정원을 두루 접하면서 자랐고, 언제부턴가 나의 정원은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으면(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포항에 있는 개인 주택 정원. 정 조경가는 자연과 벗삼아 걸으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의 아름다움을 일찍 배운 소녀는 백일장을 휩쓸 만큼 시를 잘 썼다. 부모님과 주변에선 시인이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소녀는 자연을 가꾸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왜 대학을 농대로 가신 건가요?
“꽃 심고 나무 심는 정원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였는데 막상 가 보니 벼농사, 고구마농사, 약초 키우기만 가르치더라고요.(웃음) 결국 혼자 공부했어요. 학교 농장 꽃 가꾸는 것을 함께 했던 선배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랜드 스케이프 아키텍처(미국에서 조경가를 일컫는 명칭)’ 관련 서적을 많이 보내줬죠.”
시인 박목월 선생이 평생의 은인이라고.
“아버지와 평양에서 같이 공부하신 친구분이에요. 인생의 갈림길마다 큰 도움을 주셨죠. 대학 전공을 정할 때도요. 경북대학교 영문과에서 특채로 4년 장학금을 준다고 했지만 서울대 농대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거든요. ‘가난한 선비 집에서, 그것도 동생이 네 명이나 있는데 4년 장학금을 뿌리치고 농대가 웬 말이냐’며 엄마는 나를 방안에 가뒀고, 나는 나대로 금식하면서 버텼죠. 어느 편도 못 들던 아버지가 박목월 선생님께 의논했고, 박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했어요. ‘이 애는 뭘 하더라도 영문과 가서 시 쓴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니 원하는 걸 하게 하자’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무시로 문인들이 모이는 다방 같은 데로 불러 커피를 사 주시면서 ‘술 마시지 마라. 남학생들 조심해라’ 등등 여러 가지를 조언하셨어요. 시를 쓰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시고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죠. 박 선생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어요.”

※경춘선숲길 철교 전경(2018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목월 선생의 ‘선견지명’이 맞았다. 소녀는 결국 땅에 꽃으로 나무로 시를 쓰는 사람이 됐다. 86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정부는 국제 행사를 충분히 치를 만큼 풍요롭고 세련된 풍경이 필요했다. 국립공원을 비롯해 문화유적지·고속도로·주거지역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학원 졸업 후 정씨의 손길이 차곡차곡 전 국토를 수놓기 시작했다. 물론 ‘조경’이라는 말조차 생경했던 시대라 매번 일이 녹록지는 않았다.

 

★공원 작업 설득 땐 김수영 시인 ‘풀’ 읊기도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작업 때 공무원들 앞에서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읊으며 그들을 설득하셨다죠.
“공무원들이 엉뚱한 트집을 잡으니까요. ‘물길 하나 내놓고 이게 무슨 공원이냐. 세금 낭비다’ ‘목조 다리가 썩으면 어떡하냐’ ‘공원에 왜 화장실이 없냐’ 등등. 어떤 분은 억새를 심는다니까 ‘남녀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냐’고.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웃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지역 주민들이 반대할 거다 했는데 웬걸요. 정작 주민들은 매일 나한테 고맙다면서 커피를 갖다 줬어요. 대한민국 공무원들 벽이 두꺼워서, 그 벽을 뚫느라 욕 좀 봤어요.(웃음)”
용인 호암미술관의 정원 ‘희원’ 작업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요.
“개인 프로젝트를 처음 했던 곳이에요. 책장 하나가 자료일 정도로 오랜 시간 걸쳐 해낸 일이죠. 오픈식 때 홍라희 여사님 손님으로 왔던 분들이 회사·집·별장·연구소 등의 정원도 맡아달라고 해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이건희 회장님은 제 의견이면 뭐든지 믿어주셨어요. 당신이 지나가면서 하던 말도 다 기억한다고 제 별명을 ‘컴퓨터’라 부르셨죠.(웃음)”
‘희원’을 보면서 ‘한국의 정원’의 특징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산악국가라 집 뒤에는 산이, 앞에는 강물·논밭이 있었죠. 담은 야트막해서 집밖의 산천이 다 내 것처럼 보여요. 자연을 빌려온다는 ‘차경’이죠. 뒤뜰에는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화계(花階)형식’ 정원이 있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땅에 경사가 있으니까 돌로 단을 만들고 꽃을 심은 거예요.”

※용인 호암미술관 내 정원 ‘희원’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미나리아재비’ 꽃이 시그니처 식물이라고 하던데,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초심을 잃지 말자는 거죠. 대학시절 학교 연습림 밖 축축한 땅에 미나리아재비 밭이 있었는데 그 길을 걷기를 좋아했어요. 소설 『빨강 머리 앤』에서 앤이 교회 가던 길에 모자가 너무 심심해 보인다면서 모자를 장식했던 길가 꽃도 미나리아재비였으니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요. 지금의 내가 있게 도와준 선배와 함께 식물 이야기를 하며 걷던 길도 미나리아재비 밭이었죠.”
한국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이제는 만나기 어려운가요.
“계절마다 온천지에 우리 야생화가 잔뜩인데 관심이 없으니 꽃의 이름도 아름다움도 모르는 거예요. 다들 자극적인 외래종 꽃만 알고, 우리 들판에 피는 꽃들에는 무심하죠.”
조경가는 사람과 자연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걸으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하이데거 등 많은 철학자들이 걸으면서 명상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했죠. 우리나라는 공원을 만들어 놓으면 운동하는 사람밖에 없어요.(웃음) 나 죽기 전에 내가 조성해 놓은 자연과 벗하는 길에서 훌륭한 시인이 한 명 나왔으면 좋겠어요.”/중앙일보 서정민 기자

★Landscape Architect★JUNG YOUNG SUN ★2022.6.10
★땅으로 시를 쓰고 철학해온 1세대 조경가 뜨거운 현역! 정영선의 맹렬한 삶

"에너지는 쓰는 대로 나와요. 에너지는 쓰는 훈련이 필요해요.
우리는 가만 있으면 병 나요."
1984년 아시안게임 기념 공원부터 서울 식물원, 디올 성수까지.
긴 세월 사람과 땅, 식물의 관계를 살피며 달려온 조경가 정영선의 전성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1941년에 출생한 조경가 정영선은 서울대 조경대학원 1호 졸업생(1975년)이자 1980년에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다. 이 땅의 1세대 조경가이고
지금 가장 뜨겁게 활동 중인 현역의 그는 땅과 터,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작업을 선보이며
맹렬히 달려왔다. 정영선의 조경 역사는 1984년 아시안게임 기념 공원과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예술의전당 현상설계 공모에서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선유도 공원, 영종도 신공항 조경, 아모레퍼시픽 오산공장의 원료식물원,
서울식물원에 이르는 대작들을 남기는가 하면 한 농부의 작은 앞뜰을 살피는 일에도 충실했다.
그의 작업에선 사람과 땅, 식물의 유기적인 관계뿐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이 읽힌다.
빈틈없이 정성스럽게 살아온 아름다운 조경가의 세월은 곧 그가 땅으로 시를 쓰고 철학해 온 시간이다. 
50년 가까이 일해왔음에도 선생님의 전성기는 여전히 지금인 것 같습니다.
 
최근 문을 연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어 디올 성수점의 조경도 작업 중이죠.
진행하고 있는 전국의 현장이 많은데 매일 직접 다니신다고요
설화수 북촌도 가봤어요? 예쁘지요? 에너지는 쓰는 대로 나와요. 에너지는 쓰는 훈련이 필요해요.
우리는 가만 있으면 병 나요. 모든 프로젝트마다 성질이 다르니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일해요.
타성이나 관성에 젖지 않아요. 물론 내 스타일이라는 게 나오기는 하지만.
 
★1986년 아시안 게임에 대비해 조성한 아시아공원, 제주 오설록티뮤지엄, 선유도 공원 같은
대단위 계획부터 개인주택에 딸린 작은 정원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중심으로
삼은 정신은 무엇입니까
 
이 일로 대통령부터 아주 소박하게 사는 농부까지 모두 만났어요.
하나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맹렬하게 일했죠. 일은 초기에 잘하면 평생 갑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이어갔어요. 평생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분들이 있습니다. 아름지기재단의 신연균 이사장님, 돌아가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님,
홍라희 여사님. 모두 태산과 같은 신뢰를 보내준 분들이죠. 덕분에 여러 문화시설 작업을
할 계기가 생겼고 그로 인해 많은 문화인들과 접촉하게 됐어요.
전 컴퓨터로 작업하지 않아요. 오직 손으로만 하죠. 이건희 회장님께 호암미술관에 만든
정원 ‘희원’을 “말씀하신 걸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며 보여드리니 ‘인간 컴퓨터’라 하더군요.

※대구 산격동에 지은 개인주택 ‘모헌’의 한국식 정원.

 

조경설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조경설계 회사 ‘서안’의 시작은
곧 한국조경의 본격적인 출발이었죠. 그런데 ‘조경’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조경은 사람과 자연을 이야기하는 일이에요. ‘경치를 꾸민다’는 의미의 ‘조경’이라는 단어가
조경을 오해하게 만들어요. 그저 예쁜 꽃과 나무 심는 일을 조경이라고 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씩 설득하며 일해왔어요.
80년대에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7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설계사무실을 열었어요. 그땐 거의 관공서 일을 했는데 공무원들이 조경을 잘 모를 때였죠.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으면 사무실에 찾아와 “대체 나무는 언제 심는 거냐”며 물어요.
난처한 일도 많았지만 소명의식이 절 달리게 했어요. 내가 잘해야 우리 분야가 산다는 생각에
열성을 다했죠. 밤새 고민하고 수없이 다시 생각하고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주차장을 지하로 넣은 분도 선생님이죠. 확보한 지상 녹지에는
자생식물을 심었고요. 하이데거와 칸트, 헤세가 거닐던 숲을 생각하면서요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업이 경춘선 숲길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걸어야 해요. 운동장에서 조깅은 하지만 ‘걷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산에나 가야 걷는다고 생각하죠. 경춘선 철도 옆에 소음을 막기 위한 높은 담이 있었어요.
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담을 헐자, 아파트 안에 있는 나무를 활용해 숲길을 만들자,
이상한 꽃 심는 건 최소한으로 하자 했죠. 주민들이 시끄러운 환경 속에 오래 살았잖아요.
이제는 조용하게, 그대들의 안뜰이 되게끔 하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먼 곳이라 소위 ‘핫 플레이스’는 안 됐겠지만. 나로서는 하이데거나 보바르 여사나
헤르만 헤세처럼 조경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세종시 내 중심행정타운과 중앙녹지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세종시 호수공원.

 

언제든 거닐며 명상하고 만끽할 수 있는 자연이 삶의 곁에 있도록 한 거네요
매일 1분도 틀리지 않게 숲을 걷는 철학자도 있었잖아요. 하이데거는 시골집에서
직접 정원을 가꾸고 그에 관한 글도 썼습니다.
보바르는 남편과 같이 프랑스의 모든 산길을 배낭 메고 다니며 자연 환경을 만끽했어요.
그렇게 걷는 습관이 곧 철학이 아닌가 하는 거죠.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명상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TV를 틀면 모두 춤추고 노래하고 많이 먹고 많이
즐거운 세상이에요. 그러니 세계적인 그룹도 나올 수 있었겠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단 한 사람이라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맹렬하게 끌고 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런 생각으로 이런 공간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서울아산병원의 정원도 많은 사람에게 인상적인 프로젝트로 손꼽힙니다.
거기엔 숨어서 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병원은 괴로움이 있는 사람들이 오는 장소잖아요. 우리 남편이 거의 10년을 말도
못하고 못 움직이고 병원에 있어야 했어요. 눈물로 보낸 긴 세월이 시작될 무렵,
아산병원 프로젝트가 왔어요. 둘러보고 딱 세 가지만 말했습니다.
 
첫째, 환자가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이들이 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와 생명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빨리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지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 잎새>처럼요.
세 번째는 간호하는 가족들이 울거나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얼마나 울고 싶은
순간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환자 앞에서 울 수 없잖아요. 의사와 간호사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생각을 정 회장님이 좋아했어요. 이후에도 현대 쪽과 일을 계속 했어요.
내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니 그 다음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현상공모 당선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선유도 공원.

 

조경가 정영선이 특별한 점은 경관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조경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은 항상 인간의 정서와 삶을 향해 있는 것 같아요
선유도 공원도요. 어떤 여자 분이 거기에 삶을 마감하려고 갔다가,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답니다. 너무 감사하죠. 쓸쓸한 사람들이 와서 쉬게 하는 장소였으면 했거든요.
도시에는 이런 공원도 있고 저런 공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공원에서나 돗자리 깔고
밥 먹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고요.
선유도 공원은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던 강홍빈 박사가 원안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추진한
프로젝트였어요. 그분이 도시계획 전문가거든요. 그래도 이제는 좋은 공원도 많이 생기고
쉴 장소도 늘었어요. 코로나로 몇 해째 서로 마스크 쓴 얼굴을 보고, 격리생활을 겪는 시대가 됐잖아요.
이제는 정원과 숲, 산이나 강, 공원 같은 것들이 더욱 중요해졌죠. 그러니 조경 건축의 질도 더 올라가야 해요.
 
생태의 마지노선을 지켜야 하는 일에도 항상 두 팔 걷어부쳤습니다.
여의도샛강공원 때는 거길 메워 주차장과 체육 시설을 만들겠다는 도면을 보고, 관계자에게
김수영의 시 ‘풀’을 읊으시고 해외 생태학자를 초청해 자연 하천이 유속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강연을 하게 만들었죠. 주민들도 설득하고요
조경이 해야 할 일이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땅의 쓸모에 있어서는
무조건 멀리 봐야 합니다. 후손들이 어떤 땅에 살게 될지 생각해야죠.
그래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서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한강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한강 일도 많이 했는데 한강 유역에서 보이는 남산과 강변을 생태와
경관에 맞게 더 정비하고 싶어요. 발원지부터 끝까지요. 한강에 요트 타는 곳도 필요하겠지만,
외국 것을 본받더라도 우리 경관에 맞게 가져와야죠. 건축가와 행정가,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합심해서 한국의 경관을 잘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전 조경을 위해서라면 끈질겼어요.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읽고, 하려는 일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애썼고, 전문가로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했죠.
필요하면 새벽 2시에도 찾아가서 설명했어요. 설득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산업화 과정에 생겨난 무수한 흔적의 시간, 환경과 생태를 주제로 도시 회복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조경을 건축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으로 아는 환경 속에서도 과거 작업 중 뜻이 맞는 건축가와
의기투합한 프로젝트가 많이 있었습니다
조경회사를 건축 다 해놓고 난 뒤에 들어가 작업하는 업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큰 문제가 생겨요.
조경가가 건축가들과 협업하는 게 대단히 힘든 일이에요. 사실 아직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초기에 좋은 건축가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어요. 끊임없이 대화해서,
우리가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죠.
초기에 한 일의 질이 좋으니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는 거예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면서
허심탄회하게 좋다 혹은 나쁘다 말할 수 있는, 조경을 존중하는 분들이 주변에 있어요.
일단 김종규 선생님도 아모레퍼시픽 일을 하시니, 함께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아주 잘 통하죠. 최근에는 최욱 선생도 계시고.
 
지난 <엘르 데코>에 소개된 사유원의 조경도 선생님의 손길을 거쳤습니다.
마리오 보타의 대성당이 완공된 남양성모성지 조경 작업도 하고 있어요.
 
★근래 작업 중 흡족한 장소가 있다면
아모레퍼시픽에서 한 일은 나름 성공했다고 봐요. 주택과 연구소,
오산공장의 원료식물원까지 모두 흡족해요.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기업이 조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전문인들을 모아 집중적으로 관리해 주니 더욱 그렇죠.
아낌없는 지원이 너무 좋아요. 화장은 안 하지만 화장품 원료에 관해서는 나름
안목 있다고 자부합니다. 원료식물원을 만들 때 공부 많이 했거든요.
기업에서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후원해 준 프로젝트였고 식물원 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된 곳 같아요. 아주 행복합니다.
 

거대한 자연경관의 차경, 큰 암반과 암석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남해 사우스스케이프.

 

언젠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농촌의 농경지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잔디 문화가 아니잖아요. 논이 곧 풀밭이니까요.
농촌의 기계화와는 별개로 논의 면적이 사라지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에요.
논이란 논에는 죄다 건물이 들어서더라고요. 농촌 경관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엘르 데코> 같은 매거진에서 논 같은 한국미에 관해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요.
얼마나 훼손돼 있는지,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 그런 걸 짚자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환갑 지나면 글 쓰며 살고 싶다고 했는데 벌써 20년 넘은 일이 됐습니다
그랬죠. 거짓말이 돼버렸네요!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고비가 많았거든요.
우리 회사가 돈은 참 못 벌었어요. 직원들 월급 충실히 주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곁눈질 안 하고 살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대 조경가가 맹렬히 일해서 기틀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왔어요. 우리 설계사무실을 거쳐간 수없이 많은 교수들,
소장들. 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전 그걸로 족해요. 지금껏 주어진 여건에 맞게 최선을
다했어요. 잠 안 자고 고민한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해 줘서
지금의 내가 된 거예요. 저 혼자 잘나서가 아니에요. 

조선의 달항아리 백자에서 영감을 받아 ‘ㅁ’자 형의 중정으로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자연과 도시,지역사회와 기업의 교감,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을 조성하려 했다.

 

양평의 선생님 댁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장소더군요. 뜰이 실험장이기도 한가요
그렇죠. 아마 와보면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가!’ 하면서 놀랄 겁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 있죠.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을 두고 이렇게 얘기했고, 경복궁 지으며
정도전이 새긴 뜻이기도 해요.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엄청 어려운 이야기죠.
그런데 이게 한국의 ‘미’입니다. 도자기든 수예든 우리 생활에 깃든 아름다움이
다 그래요. 대체 화려한 것은 무엇이며 사치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싶지만,
너무 멋진 말 아닌가요. ‘애국가’에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 하죠.
세상에 무궁화를 화려한 꽃이라 부르니, 참 대단한 민족이에요. 난 이런 게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인간과 식물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깊은 교감을 고민하며 조성한 마곡동 서울식물원.

 

선생님의 조경에는 바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조경은 시간이 완성하는 일이라 하셨으니
꽃잎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생긴 꽃방석도 모두 의도한 것일 테지요.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오랜 경험이나 장면이 있다면
내가 만드는 풍경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뇌리 속에 새겨진 장면이 있어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셨어요. 작은 산인데 제일 꼭대기에 집이 있었어요.
과수원이 집 주변으로 펼쳐지는데 냇물도 흐르고 아주 커다란 바위가 일곱 개 있어 칠암농원이라
불렀어요. 조부모님은 아주 깔끔한 분들이었어요. 마당에 잡초 하나 없었죠.
또 아버지는 선교사 계통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어요. 그 학교가 화강암으로 지은 미국식
건물이었는데 정원에는 선교사들이 온갖 꽃과 나무들을 심었어요.
내가 늘 거길 지나 다녔거든요. 아주 토속적이고 깨끗하고 미니멀한 시골 경관, 그와 전혀 다른
서양식의 화려한 정원을 매일 봤어요. 그 장면들은 아직까지 꿈에서도 못 잊어요.

★Credit★에디터 이경진★삽화 숙윤 COURTESY OF 서안 디자인 김희진/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