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벨 문학상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욘 포세(64)에게 돌아갔다.
5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포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헤우게순에서 태어나 1983년 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다.
1990년대 이후 시, 어린이 책, 에세이, 희곡 등을 써 왔으며, 최근 몇 해 동안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을 써왔다”고 밝혔다.
포세의 희곡은 전 세계 무대에 수백번 이상 올랐다.
포세는 노르웨이에서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1828~1906)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을 올린 극작가로, 북유럽을 대표하며 현대 연극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는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보트하우스』, 희곡집 『가을날의 꿈 외』,
3부작 중편 연작소설 『잠 못 드는 사람들 외 3편』, 아동소설 『오누이』 등이 번역돼 있다.
2003년에는 프랑스에서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문학상 수상자에는 메달과 증서, 상금 1100만 크로나를 수여한다.
오는 6일에는 평화상과 경제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 예정이다.
앞서 2일에는 생리의학상을 커털린 커리코(68)·드루 와이스먼(64)이 받았고,
3일에는 물리학상을 피에르 아고스티니(70)·페렌츠 크러우스(61)·안 륄리에(65)가,
4일 화학상은 문지 바웬디(62), 루이스 브루스(80), 알렉세이 예키모프(78)가 받았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개최한다./중앙일보2023.10.07
노르웨이의 포세는 현대 희곡뿐 아니라 소설과 시, 아동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명작을 남겨 ‘제2의 헨리크 입센’,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라 불리는 작가다. 북유럽 문학의 기수로 평가받는 그는 북유럽 특유의 철학적이고, 허무한 정서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탁월한 서사로 승화시키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 노르웨이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1903), 크누트 함순(1920), 시그리드 운셋(1928)에 이어 네 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 (현지시간) 세계에 생중계된 유튜브 발표에서 포세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 희곡과 산문의 작가”라고 소개했다. 또 “그의 작품은 희곡·소설·시집·에세이·아동도서·번역서 등 방대한 장르와 작품을 아우른다”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공연되는 극작가 중 한 명이지만 산문으로도 점점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포세는 성명을 통해 “(수상 소식에) 압도되고 다소 두렵다. 이 상은 다른 어떠한 고려 없이 문학성을 가장 지향하는 문학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 인터뷰에서는 “전화가 왔을 때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비해 왔다”며 “전화를 받은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1959년 노르웨이 해안 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비교문예학을 전공했고, 호르달란주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쳤다. 1983년 장편 소설 『레드, 블랙』으로 데뷔한 후 『보트하우스』 『병 수집가』 『납 그리고 물』 등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희곡은 세계 무대에 1000회 이상 올랐다.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 꼽힌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이다. 장편소설 『보트하우스』를 번역한 홍재웅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는 “포세는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가”라며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같은 웅장하고 신비한 자연이 주는 고립감, 타인을 향한 불안감, 삶과 죽음 같은 테마를 주로 다룬다”고 말했다.
포세의 작품은 주로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큰 주제로 이야기가 확장된다”는 게 홍 교수 설명이다. 그는 “포세는 가족, 연인 등 관계에서 생기는 심리적 변화를 사실적으로 풀어낸다”고 했다. 윤시향 원광대 명예교수는 “포세는 음악이 흘러가는 것처럼 리듬이 교차하는 식으로 작품을 전개한다”며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장편소설 『보트하우스』 『아침 그리고 저녁』, 어린이 책 『오누이』 등이 출간됐다. 장편소설 『멜랑콜리아』가 20일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가을날의 꿈’(2006), ‘겨울’(2006), ‘이름’(2007), ‘기타맨’(2010), ‘어느 여름날’(2013) 등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도 국내에서 초연된 바 있다./중앙일보2023.10.8
★수상
- 1998 뉘노르스크 문학상
- 1999 도블로우그상
- 2003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 2005 브라게상,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
- 2007 스위스 아카데미 북유럽문학상
- 2010 국제 입센상
- 2014 유럽연합 문학상
- 2015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 2023 노벨문학상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만들어낸 심오한 이야기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생의 시작과 끝을 독특한 문체에 압축적으로 담아낸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현재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2000년 발표한 이 작품은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또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짧은 소설이다.
노르웨이 해안마을 어딘가, 한 살림집에서의 출산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일이 잘못되어 아내나 아이나 아내와 아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찬 남자의 내적 독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념은 분명 그들을 도와 온갖 나쁜 일로부터 구원해줄 신에게로 향한다. 미처 단어가 되지 못한 외마디 모음과 뒤섞인 아내의 비명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초조한 시간은 끝난다. 그렇게,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긴 시간이 흘러, 요한네스는 노인이 되었다. 아내도 친구도 곁을 떠난 지금, 적막하고 고독하기만 한 요한네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썰렁한 집안에서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별다른 기대가 없는 일상,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고 원래 그대로인데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듯하다. 늙은 몸도 무게가 거의 없는 듯이 가뿐하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 풍경이 어쩐지 너무 달라 보인다. 요한네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서쪽 만으로 산책을 나간 길에, 페테르를 만난다. 같이 배를 탔고 오십 년 넘게 서로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던 절친한 친구,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를. 여느 때처럼 위층 다락방에서 잠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던 아내가 집안의 불을 밝히고 기다리다 그를 위해 커피를 끓인다.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듯 지나가버린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지만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른 이날, 도대체 요한네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번역 박경희
독일 본대학에서 번역학과 동양미술사를 공부하고, 현재 영어와 독일어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숨그네』 『청춘은 아름다워』 『엔젠 씨 하차하다』『흐르는 강물처럼』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맨해튼 트랜스퍼』 『암스테르담』 『첫사랑, 마지막 의식』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추천사
-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주제, 바로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작업을 아주 능청맞고도 사랑스럽게 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찬 모든 문장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하면서,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 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 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무지갯빛 색실로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처럼, 작가는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아름다운 벽화를 천의무봉의 손길로 직조해낸다. 이 이야기와 함께하는 순간, ‘이토록 가까운 삶’과 ‘저토록 머나먼 죽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 박경희 (영어,독일어 번역가)
-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이보다 더 원형에 가깝게 축약할 수 있을까. 이 짧은 소설을 장편소설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삶의 원형에 가까운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 김성은 (코너스툴 대표)
-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직면하게 될 생의 마지막 하루를 욘 포세의 글을 통해 미리 경험해본다. 이른 아침에 다 읽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리다가 금세 저녁을 맞이하게 만든 책. 공기처럼 소중한 이들을 되새기고 싶은 어느 한적한 날에 어김없이 다시 꺼내어 읽게 될 것 같다.
- 정승희 (서툰책방 대표)
- 요한네스는 생각했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삶의 시작과 끝의 순간을 잔잔한 파도처럼 그려낸 이 소설은 우리에게 삶을 이루는 단순한 본질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무에서 무로 가는 여정에서 남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고. 책을 덮고 나니, 고요 속에 안도와 평온의 빛이 은은하게 퍼진다. ‘사람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
- 박윤희 (좋은 날의 책방 대표)
-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조바심 내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 박은지 (부비프 대표)
- 이 책을 읽는 동안 온전히 알기 어려운 존재의 탄생과 사라짐, 그 언저리를 지나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르다. 눈앞에 보이는 삶이 무거운 동시에 믿을 수 없이 가벼워 보인다.
- 이해인 (문우당서림 디렉터)
- 일상의 편린 같은 순간들을 조금 더 ‘섬세히’ 느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천천히 물기가 스며드는 모래의 모습처럼 적셔주고 있는 듯하다. 슬프면서 아름답고 먹먹하면서 어딘가 상쾌하다는 이 감정을 감히 표현할 수 없기에, 그저 조심스럽게 이 책을 내밀어주고 싶다.
- 김도훈 (예스24 소설 MD)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이세상’ 소설이 아니다 별다른 문턱 없이 이어지는, 저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삶과 죽음이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듯 한 사람의 삶은 물론 죽음까지도 남아 있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이 쉼표로 이어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삶과 죽음 이야기를 마주하고, 아침 그리고 저녁 늘 곁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과 머리맡에서 체온을 나누는 털뭉치를 생각한다 오늘도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지금 이 순간을 마음 깊이 간직해본다.
★출판사 서평
최근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욘 포세는 희곡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발표 이후 지금까지 수십 편의 희곡을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렸고, ‘입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서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으며, 언어가 아닌 언어 사이, 그 침묵과 공백의 공간을 파고드는 실험적 형식으로 ‘21세기 베케트’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군더더기를 극도로 배제한 미니멀한 구성, 리얼리즘과 부조리주의의 중간쯤 있는 반복 화법으로 매일의 생존투쟁에서 체념하고 절망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비극들을 무대에서 선보여온 포세는 이 작품을 출간하고 나서 희곡보다 소설 쓰기에 좀더 집중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후 2014년 유럽 내 난민의 실상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이중적 면모를 비판한 작품 『트릴로지』가 문단 안팎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매년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방대한 분량의 『또다른 이름-7부작』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작가의 역량은 장르를 불문하고 뻗어나가 희곡과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에세이, 어린이책까지 전 세계 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다.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브라게 명예상,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국제 입센상을 비롯 유수의 문학상으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
탄생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로 포착한 전 생애의 디테일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 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이토록 가까운 삶과 저토록 머나먼 죽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다.” 정여울
바지런한 산파의 움직임, 산모의 고통 어린 숨, 이제 곧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기대와 걱정. 소설은 노르웨이 해안마을 어딘가, 한 살림집에서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이 잘못되어 아내나 아이나 아내와 아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찬 남자의 내적 독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념은 분명 그들을 도와 온갖 나쁜 일로부터 구원해줄 신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 남자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처 단어가 되지 못한 외마디 모음과 뒤섞인 아내의 비명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초조한 시간은 끝난다. 그렇게,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장이 바뀌고 그사이 긴 시간이 흘러, 요한네스는 노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너무 외진 곳이었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이곳에 터전을 잡았고 고깃배를 타고 나가 생계를 꾸렸다. 아내도 친구도 곁을 떠난 지금, 적막하고 고독하기만 한 요한네스의 삶에서 근처에 사는 막내딸만이 의지처가 되어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의 하루가 막 시작된 참이다. 썰렁한 집안에서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별다른 기대가 없는 일상,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고 원래 그대로인데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듯하다. 늙은 몸도 무게가 거의 없는 듯이 가뿐하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 풍경이 어쩐지 너무 달라 보인다. 요한네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여하튼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달라진 것이 있어도, 그것은 아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할 것이다, 아니면 혹시 밖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을까? 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까, 대수로운 게 아니라도, 그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그저 뭔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히 달라 보이게 하는 그런 일이? 하지만 그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닌가? 49~50쪽
그리고 여느 때처럼 서쪽 만灣으로 산책을 나간 길에, 페테르를 만난다. 같이 배를 탔고 오십 년 넘게 서로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던 절친한 친구,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를. 여느 때처럼 위층 다락방에서 잠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던 아내가 집안의 불을 밝히고 기다리다 그를 위해 커피를 끓인다.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듯 지나가버린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지만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른 이날, 도대체 요한네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든 게 그저 그의 상상인가? 또 번호 없이 여백으로만 구분된 마지막 장에는 어떤 결말이 준비되어 있는가?
요한네스라는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요한네스라는 늙은 어부가 생의 마지막날을 맞이하려 한다. 이 양끝 사이의 삶은 요한네스의 착각이나 환각, 그리고 조각난 기억들로 채워진다. 죽은 자들이 숨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그 기억은 요한네스가 지나온 삶에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만들고, 확신했던 일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이렇듯 이야기 속에서 삶과 죽음이, 물질적 현실계와 형이상적 세계가 자연스레 겹친다. 시간 또한 선적으로 흐르지 않아서 현재와 과거가, 과거와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작품의 형식 또한 이를 구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쉼표로 잠시 침묵한 뒤 다음 문장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 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와 있다(정여울).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주고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제 아이에게 물려주듯이, 삶과 죽음의 세계는 마치 문장의 사슬처럼 서로 이어지고, 겹치고, 스며든다.
이처럼 ‘저편으로 넘어가는’ 존재의 상태는 연구자 크뤼거가 욘 포세 인물들의 특징으로 설명한 ‘멜랑콜리커’와도 닿아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요한네스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불안한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한다. “멜랑콜리커는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불안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사라져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 여기 머물러라”
가장 단순한 언어로 만들어낸 가장 심오한 이야기
소설의 시작에서 아이의 탄생을 앞둔 아버지는 말한다. 거리의 악사가 훌륭한 연주를 할 때, 그의 신이 말하려는 바를 조금은 들을 수 있다고, 신이 거기 있다고. 하지만 사탄이 이를 좋아할 리 없으니, 정말 훌륭한 악사가 연주하려 하면, 늘 많은 잡음과 소음을 준비한다고. 이 책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특별히 나직하고 고요할뿐더러 짧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도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화려한 미사여구로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무대 위에서 독백을 들려주는 배우처럼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가 쉴새없이 울리는 데 비해 인물들끼리의 대화는 과묵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다. 침묵으로 여백이 깃들고, ‘그래’ ‘아니’ ‘그리고’와 같은 단어가 반복되며 특별한 리듬이 만들어진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임을,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 음악은 너무 아름답기에 사탄의 방해는 그저 헛되지 않은가. 욘 포세는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심오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쉼표 너머의 침묵, 그 내밀한 뉘앙스를 채워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 언론평
삶과의 이별을 다룬 탁월한 소설. 디 차이트
삶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에 대해 최근 수년간 나온 작품 중 이보다 더 슬프면서도 경쾌하고 위안을 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어느 행복한 죽음의 짧은 연대기가 놀라우리만큼 명료한 언어로 전개된다. 쿨투어슈피겔
포세의 언어는 과잉됨이 없고 언제나 새로운 발뢰르를 근거로 한다. 음악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작은 디테일까지 철저히 계산되어 구성된 것이다. 베를리너 차이퉁
평범하기 그지없는 늙은 어부 요한네스의 이야기. 그는 지나간 삶을,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큰 사람들을 회상한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친구 페테르가 그들이다. 요한네스의 동경은 바로 이날 이루어진다.
욘 포세는 간명하고 더없이 나직하고 마음을 빼앗는 책을 완성해냈다. 한델스블라트
그의 작품은 아주 단순한 동시에 아주 심오하다. 쉼 없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문체로, 누구든 어느 세계에 속해 있든 자신과 관계된 문제라 느낄 법한 상황들을 그려낸다. 베르겐트 티덴데
포세는 입센, 베케트와 비견되어왔고, 입센적 특징에서 정서적인 본질만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에는 강렬한 시적 단순함이 있다. 뉴욕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