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명상 (1)
보스톤코리아 2020-10-05
올 봄에 갑자기 들어닥친 코로나의 돌풍은 창앞까지 찾아온 봄의 전령도 반갑게 맞아주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역풍은 여름조차 통채로 삼켜버리더니 이제는 이 위기가 언제나 멎으려나하는 불안 속에서 벌써 가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는 내가 속한 운동클럽이 폐쇄되어 단체운동의 길을 잃게되었다. 혼자서라도 운동은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이웃을 산책하는 것이 어느듯 나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다행이랄가, 내 이웃에는 잘 손질된 대저택들이 즐비하다. 이 저택들의 소유자의 대다수는 유태인이지만 그중에 상당수는 동양인이거나 아니면 백인과 결혼한 동양인일 경우가 많다. 이런 것울 보면 미국의 본토백이 청색의 혈통 (Blue Blood)도 점점 물려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뉴톤에 있는 여러개의 마을중에도 내가 사는 마을은 각집의 년 평균 수입이 $100,000을 넘는 부촌이라고한다. 우리집은 아마 그 중에서 가장 작 은 집에 속할것이다. 그러나, 지하층에 있는 남편의 서재에 20,000권이 넘는 장서와 2,000여장의 레코드를 수장할 수 있었고 여기서 내 남편과 꿈같은 19년의 결혼생활을 한곳이니, 내집은 그 크기를 막론하고 정녕 즐거운 집이고 여기서 내 여생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세계를 휩쓸은 코로나의 위세는 지난 6개월동안 미국에서만도 195,000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이 숫자는 미국이 한국동란 이후에 미국인이 겪은 모든 전쟁의 사상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에 겹친 흑인 인권운동 (Black Lives Matter)은 이 전염병의 전파를 더욱 악화시켜서, 의술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있다는 미국이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속출하고 있으며 그 기세는 아직도 좀처럼 꺽이지 않고있다. 이러한 불운에도 불구하고 백인우월주의를 고집하는 공화당의 60%는 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한다고하니 백인 우월주의가 얼마나 미국인 사회에 깊이 뿌리밖고 있는가를 상기시켜준다. 이들간의 권력다툼에 끼어있는 동양인,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흑인들의 약탈과 방화등으로 인하여 막심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하며, 따라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민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한다. 강력범이 많아지니 더 이상은 미국에 살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수주의 백인들의 사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구는 다민족의 수가 더 많아져서 보수파의 백인들은 소수로 전략하고 있으며 그 예로 지난해 하바드 입학생들의 50% 이상이 백인이 아닌 다민족이었다. 흑인 인권 운동의 항쟁은 노예해방 을 선언한지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끈임없이 전개되는 사회적 만성질병이며 이 문제는 미국의 흑인들이 지속적으로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하는 오랜 투쟁이 될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전염병의 결과는 수많은 사상자의 문제인데 오늘은 이런 죽음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려한다.
죽음은 생물학 견지에서 보면, 세포가 분열할때마다 우리의 세포가 지니고 있는 생명줄이 (telomere) 조금씩 줄어들어 그 이상 줄어들을수 없게 될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물, 특히 동물은 일정한 길이의 생명줄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이 수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는 100년을 중심으로하여 ± 20%, 즉 80-120세가 우리의 수명인셈이다. 물론, 우리 몸 속의 정상세포가 악성으로 변형되면 이들은 자신의 생명줄을 연장시키는 효소를 가지게 되어 주체 (host)가 소멸한 후에도 조직배양을 통하여 무한히 살아남게된다. 그러나 우리 몸속의 모든 세포 (3x1013)가 동시에 악성으로 변형되지 않는한, 우리의 생명은 끝을 내게 되어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이런 죽음을 두려워하여 일생을 두고 비창한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모찰트는 36세에 요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서 경쾌하고 명랑한 음율을 많이 남겼다. “신은 죽었다 ”라고 큰 소리를 하던 영국의 수학자 뻐트랜드 러쎌은 죽음이 임박해오자 이를 두려워하여 공포에 떨었다고한다.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죽음을 두려워하여 삘리 그래함 목사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안수기도를 받음으로써 마음의 평안함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의 속담중에 잘 죽는것이 다섯가지 복에 든다고한다. 영국의 대문호인 쉐잌스피어는 “All is well that ends well” 이라하여 끝이 좋으면 모든것이 잘 된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잘죽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우리가 일생을 통하여 무엇을 하다가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포로가 되어 화형을 당한 죤다크, 그리고 3.1 운동에서 체포되어 옥사한 우리의 유관순여사, 촉석루에서 적장을 안고 익사한 황진이는 모두 10대의 소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아 우리 발길의 등불이 될것이다.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죽은 우리의 애국시인 윤동주, 그리고 같은 26세에 폐병과 신랄한 비평속에 죽음을 맞이한 영국의 의사시인 죤 키츠등이 남긴 주옥같은 시는 오늘날도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곤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몰려 자살을 감행한 화란의 천재 화가 반 코흐 의 작품은 오늘날 수많은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으며 , 폐병으로 요사한 폴란드의 작곡가 쇼팡 의 음악도 수없이 많은 음악의 전당에서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이들은 모두 30여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들의 업적은 우리의 문화속에서 살아남아 우리의 생활을 좀더 풍요하게 할것이다. 쇼팡의 음악은 상당히 감성적이어서 그를 건반의 시인이라고도 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천재들이 이와같이 불운속에서 생을 마감한것은 아니다. 영국의 계관 시인 알흐레드 테니슨은 그의 재능을 일찌기 인정받아 여유로운 인생을 보냈다. 무균술과 마취술이 없던 시기에 영국의 국왕 죠지 4세의 뇌종양을 성공적으로 수술해 낸 영국의 저명한 외과의사 애슬리 쿠퍼 도 그의 특출한 의술로 인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당대 최고의 명성을 만끽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현미경을 통하여 미생물의 세계를 처음 발견한 화란의 과학자 레벤 훜과 중세기 문예부흥시의 천재 화가이며 조각가였던 마이클란제로도 각기 90여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수명을 유지하며 명성과 부를 얻어냈다. 이와같이 인생의 종말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 모든 천재들의 종말이 어떠하였든지 또는 그들 수명의 장단을 막론하고 그들의 업적만이 우리의 역사속에 길이 남는다.
★어느 여름날의 명상 (2)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딬킨슨은 “내가 있음으로하여 나와 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내 인생은 가치 있는 것이었다” 라고 말했다. 미국의 교육자 호레스 맨 도 “인류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인생을 마금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하였다. 그러면 80을 바라보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 결산할 수 있을가 점검해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처음 20년은 세계 제 2차대전과 한국 동란, 그리고 두 차례의 혁명을 겪으며 한국에서 초등, 중고등, 그리고 대학을 마쳤다. 이후, 미국에 와서 석, 박사를 마치고 수년의 연수끝에 1979년 보스톤 의대에 미생물학 조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보스톤 의대에 재직중인 교수진과 직원 2,000명중에 동양인 교수는 오직 나 하나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는 더 더구나 꿈도 꾸지 못할 귀한 기회였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재직 16년을 통하여 나는 별로 신통한 연구결과를 출산하지 못했다내가 별 성과를 내지 못한데 대하여는 여러가지의 변명이 있었다. 우선 내가 하고 있었던 단백질 화학이 어려운 학문인 것이 주된 연유였고 그 외에도 내 개인의 감정적인 상처로 인하여 나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것 같다. 내가 교수로 임명된지 얼마 않돼서 나의 동생이 말기 유방암에 걸렸을때 “ 우리 언니가 암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나를 구해 줄거야” 하던 그의 소원을 들으며 내가, 아니 우리 모든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를 절감하게 했다. 그러나 암 치료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가 캘리호니아에서 연수를 마칠때 내 책상을 물려준 나의 동료 제임스 피. 앨리슨 (James P. Allison)박사는 암을 치료하는 항체를 개발하여 2018년에 노벨 의학상을 수여했다. 물론 이런 치료법이 없었을 때 암에 걸린 나의 동생은 아직 젊은 나이 (36세)에 사망했다. 그외에도 내가 아직 대학원에 있을때 나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고독감까지 더하여 나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다. 더구나 내가 속해있던 미생물 학과는 교수진이 모두 유태인이었음으로 나는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차별외에도 이방인의 차별까지 감수해야했다. 피눈물나는 아픔이었다. 결과는 내가 드디어 학계를 떠나 기업에 종사하게 된것이었다. 내가 일하던 회사는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회사이었는데 입사후, 나는 여러개의 암 진단 시약을 개발한후 심근경색 진단시약을 개발할 기회가 생긴것이었다. 내 일생을 암연구에 바치겠다던 내가 암연구에서는 아무런 특유한 공헌을 하지 못했는데 심장병에 대하여 공헌할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설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제는 단백질 화학을 전공하고 면역학을 연수받은 나의 배경에 적격인 과제였다. 심근경색으로 인하여 괴사된 조직을 검출하는 이 시약은 미국인들에게는 의 제1의 사망 원인인 심장병을 진단하는데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시판된지 22년이 된 이 진단시약 (c-Troponin-I test)은 지금은 전 세계에 보급되어 미국에서만도 약 $1 billion (1조원) 이 넘는 이득을 내고 있다고하며, 이로 인하여 심장병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비율이 지난 50년동안에 73%나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인의 식생활과 생활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 동안에 발달된 의학의 기술이 그 바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확인 할수 있는 시약이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유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란서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틀 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고 하였던 말이 확증이 된 것이었다. 이러한 나와 내 팀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이 시약을 쓰고 있는 회사는 그 높은 수익을 조금이라도 나와 내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기는 커녕, 내 공적에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다. 이런것을 보면 개인의 능력을 착취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는, 자본주의 미국 대 기업의 망덕을 잘 엿 볼수 있다.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쏘련의 작가 알랙산더 쏠제니첸 이 미국의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 실망하여 다시 쏘련으로 돌아갔던 일을 이해하게 된다.
※오세경 전직 보스톤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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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
보스톤코리아 2022-03-28
철이 들면서부터는 우리 모두가 결국은 죽게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매일 당면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사투를 벌려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와 같이 19 40년도 전후의 출생자들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등의 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온 세대이었음으로 우리의 생존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배우자와 친구까지 타계하는것을 지켜보는 요즘에는 내가 죽을 차례도 멀지 않았다는 쓸쓸한 생각을 가지게된다.
그러면 우리의 인간의 죽음은 무엇을 뜻하며 이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잠간 생각해 보려고한다. 로마서 5:12 에서는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사람의 죄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그 아내 이브와 더불어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사건을 말하고 있다. 이런 원죄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은 때가 되면 죽어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의 수명이 단지 24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가 있는가 하면, 몇천년을 두고 아직도 살아 있어서 그의 정확한 수명을 추측할수 없는 거대한 sequoia tree 도 있다. 그러나 인간, 특히 모든 동물들은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 가 운데는 아무리 사랑하는 애견이라라도 늙어서 우리가 보는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수명이 다하면 죽게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우리가 살아 생전에 행한 개개인의 죄의 유뮤와 무관하다는 것을 볼수있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두고 이를 찬양한 구절도 읽어볼수 있다.
요한복음 2:24 “….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러한 예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에서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알을 낳기 위해 연어는 수천마일의 바다를 거슬러 올라와 사력을 다하여 민물에 도착하면 산란을 하고 이후에 죽어버리는 것을 볼수있다. 이들은 알을 낳기위해서, 그리고 후손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식물계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데, 봄이되면 새싹이 나서 자라고 여름에는 그의 풍성한 잎이 하늘을 뒤덮힐듯 왕성히 자란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그 풍성한 잎이 화려한 색갈로 변하여 여름의 찬란한 역사를 빛내여 주고는 가지에서 떨어져 (이것을 생화학에서는 apoptosis 라고 함) 지구상을 굴러다니다가 썩어버리고 만다. 이럼으로써 그의 주체가 된 나무는 더욱더 왕성하게 자라나고 추운겨울을 버티어낸다. 이와같이 모든 생물은 때가 되면 죽어야만하고 이로 인하여 새생명이 태어나고 이럼으로써 지구상의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볼수있다.
이와 반면에, 우리의 수명이 다하기전에 당하는 죽음에 대하여는 여러가지의 양상을 볼수가 있다. 무슨 연유이건 자의에 의하여 행하는 자살이 있는가하면 흉악한 범죄의 결과로 타살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것은 분명히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범죄의 결과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죄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죄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죽음도 상당히 많다. 가령 1-4세의 어린이가 백혈병으로 사망을 한다든가 부모로부터 변이된 유전자를 이어 받아서 일생동안 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제명이 다하기 전에 죽게되는 경우이다. 물론 이런 병들은 희귀한 경우이지만 이런 변이된 유전자를 가지고 타고난 선천적인 병도 4,000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속에서 살다가 끝을 마금해야 하는가.
이러한 희귀 질환을 제쳐 놓고도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이 암으로 사망한다. 미국에서는 심장병 다음가는 사망원인 이지만 한국에서는 암이 제일의 사망원인이다. 이 경우에 암 환자의 1% 내외가 유전자 변이에 의한 선천적인 요인이고 80%이상은 후천적인 요인에 위하여 일어난다고한다.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나 그 기작이 하도 다양함으로 여기에서 이들 다 열거할수는 없지만 요점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자 자체를 변형시키거나 또는 이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켜 정상이 아닌 이상한 복제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의 정상기능을 상실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생태계는 계속해서 우리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의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80일이 지나면 지금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포를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한다.
암 생물학 책을 저술한 Raymond Rudden 박사에 의하면 ,이러한 복제 과정에서 염기 한두개의 착오를 일으킨 경우에는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의 항암 작용의 이를 제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착오가 한가지의 유전자에 2개이상 9개까지가 누적되었을때에는 정상 세포가 악성세포로 변형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악성세포는 암세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성경이 시사하고 있는 사망의 원인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한 말씀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세포가 온건한 상태가 아닌데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유전자를 복제하다가 결정적인 잘못을 일으켜서 세포가 제 역활을 할수 없게되고 이러한 착오가 누적되면 결국은 악성세포로 변형된다고 하는 결론은 암의 발전기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현대과학이 발전되기 몇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이 이와같이 생체의 비밀을 정확히 기술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복제 과정에서 한두개의 착오는 몸에서 제거가 된다. 그러나 이런 착오가 결정적인 역활을 하는 유전자인 경우에는 염기 하나를 잘못 복제하여도 암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ras mutation 의 경우이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 즉, 마태복음 12:31 “…. 사람의 모든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 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이런 구절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있듯이 우리의 착오로 복제를 잘못하여도 결정적인 역활을 하는 유전자를 잘못 베끼면 암으로 변형된다는 원리와 상당히 흡사하다.
위에서 본바와같이 우리의 수명이 다하여 맞이하는 우리의 죽음은 극히 자연스로운 자연의 섭리이고 죄와 유뮤와 상관이 없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았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죽음을 맞이 하기전에 우리는 어떤 양상으로 일생을 보내다가 끝마금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알코홀이나 아편 중독에 걸려 일생을 취생몽사 하듯이 보내다가 차거운 길거리나 감방에서 보람없이 생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은 적탄에 맞아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우리 나라의 이순신 장군이나 영국의 넬슨 제독과 같이 장엄한 죽음을 마지할 곳인가. 그것도 아니면 잘먹고 잘 놀다가 아무 유산도 남기지 못한채 가치없는 죽음을 마지할 것인가. 우리는다음 세대를 위하여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 것인가.
우리는 이생명이 다하기 전에 우리가 해놓고 죽을 준비가 잘 되어있는가를 점검해야 겠다고 생각된다. 영국의 대문호 William Shakespeare 는 “All is well that ends well”이라고 하여 좋은 끝마금을 하면 인생은 잘 보낸것이라 하였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 악령을 이긴자에게는 천국의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하여 영생케 하시겠다” 는 주의 약속이 있다.
( 요한 계시록 2:7절).
※오세경 (약대 61)전직 보스턴 의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