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릴케의 가을詩
도로 옆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풍경.
가운데 홈이 있는 은행잎을 가리켜 “둘로 나뉜 이 생동하는 잎은 본래 한몸인가 /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라고 노래한 이는 괴테였죠.
60대의 괴테는 서른다섯 살 연하의 여인 마리아네에게 이 시를 적어 보내 마음을 얻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을 찾다 /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됐으니 /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았는가 /
내가 하나이면서 또 둘인 것을.”
가을은 곧 다가올 죽음을 묵상하는 계절이라 고요하고, 잎새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시인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노래한 것은 명상적인 분위기에 취해서겠죠.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해시계들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워주시고, /
벌판에는 바람들을 풀어놓아주십시오”라고 읊은 시인은 릴케입니다.
릴케는 가을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시를
“잎이 지고 있다. 지고 있다 멀리에서부터인 듯 /
겹겹 하늘 속 먼 동산들이 다 시들기라도 한 듯 /
잎이 지고 있다 거부하는 몸짓으로”라고 시작합니다.
이 시에서 그는 “밤이면 무거운 지구가 떨어진다 /모든 별을 떠나 고독 속으로”라며
‘떨어지는 계절’로 가을을 묘사하는데요. 릴케는 독일 시인이지만, 이 시를 읽다 보면
왜 가을을 영어로 ‘fall(떨어진다)’이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릴케는 이어 노래합니다.
“우리 모두가 떨어지고 있다. 여기 이 손이 떨어지고 있다. /
다른 손을 보아라. 모든 것 가운데 떨어짐이 있다. //
그렇지만 한 이가 있어, 이 떨어짐을 /
무한히 부드럽게 그 두 손 안에 받는다.”
빛이 이우는 계절, 모든 떨어지는 것을 두 손으로 감싸안는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슬픔을 버텨낼 기적
끔찍한 주말이 지나고, 슬프디 슬픈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대표작 ‘시스티나의 성모’를 떠올려 봅니다.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에 있는 작품입니다.
어린 예수를 품에 안고 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듯한 성모의 앳된 얼굴은 라파엘로답게 온화하고,
맑고 깊은 눈동자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조주관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가 쓴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아르테)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어둡고 무거운 작품세계와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성모를 즐겨 그린 라피엘로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는군요.
안나가 언급한 ‘위대한 그림’은 바로 라파엘로의 대표작 ‘시스티나의 마돈나’.
이 그림의 사본을 서재에 걸어놓고, 도스토옙스키는 기도하며 최후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써 내려갔답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성모를 그린 ‘이콘(성화)’이 기적의 힘을 지녔다고 여깁니다.
품에 안은 어린 아들의 고통을 예견하는 젊은 어머니가
그 슬픔을 버텨내려면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일까요?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가을빛은 야속하게도 찬란합니다.
릴케는 이렇게 가을을 읊었습니다.
잎이 지고 있다. 지고 있다 멀리에서부터인 듯/
이 시에서 그는 “밤이면 무거운 지구가 떨어진다/
모든 별을 떠나 고독 속으로”라며 ‘떨어지는 계절’로 가을을 묘사하는데요.
릴케는 독일 시인이지만, 이 시를 읽다 보면 왜 가을을 영어로 ‘fall(떨어진다)’이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릴케는 이어 노래합니다.
빛이 이우는 계절,
모든 떨어지는 것을 두 손으로 감싸안는다는 그 한 사람,
과연 계시기는 한 건가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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