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년 교황은,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를 그릴 유명한 화가를
찾던 중 .로마 교황청은 당시 이태리에서 명성이 가장 높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불러 성서 속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광경을 벽화로 그려줄 것을부탁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부탁을 받은 다빈치는 그때부터 실제로 그림의 모델로 쓰일 사람(모델)들을
찾아다녔다고 하며,오랜 엄선 끝에 1492년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수 있는 깨끗하고 선하게 생긴 19세의 젊은이를 찾은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 후 6년 동안 예수의 11명 제자 그림을 모두 다 완성한 다빈치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아다니게 되었는 데,
다빈치가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된 로마의 시장은
로마의 지하 감옥 속에는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 명의 죄수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한번 모델을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의 제안을 승낙 한 다빈치는 로마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들의 감옥을 방문한 뒤,그곳 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한 죄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1500년 전 유대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에게 은화 몇 개를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못된 사람의 얼굴을 그 죄수를 모텔로해,몇 달에 걸친
작업을 통해 더디어 유다의 모습을 다 그린 뒤,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완성 시킨 다빈치는 모델은 이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간수에게
통고를 하였다.
그러자, 그가 연행되자,그는 갑자기 결박을 풀고 다빈치 앞에 무릎을
꿇고, 살인범은 다빈치에게 계속 자신을 모르겠냐는 질문을 하면서,
재차 또 다시 묻자, 그러자 다빈치는 난 당신 같은 사람을 내 인생에서
만난 적이 없소라는 답변을 하였다.
그러자, 순간 젊은이는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의 예수상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부르짖었다. 고 한다.
" 저기 저 그림 속에 그려진,6년 전 예수의 모델이 바로 나였소."
"그래도 나를 모른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현재 이태리의 르네상스 미술역사에 등장하는 위의 일화는 사실이였을까? 글세...다.?!
그렇게 얼굴이 성스럽고 깨끗했던 젊은이가, 로마 최악의 살인마로
돌변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건 다빈치만 아는 비밀이나까?말이다.
말로는 여기에서, 다빈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아 이 그림 이후로는
예수에 관한 그림을 그는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고,하는 데...?/옮
★다빈치 ‘최후의 만찬’ 속 숨겨진 비밀
모든 인류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을 때 혼자서 새벽으로 걸어나온 인물이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다.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5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수차례 파괴와 손상을 겪었다. 1977년부터 22년간의 마지막 복원 작업을 거치며 “복원 화가들이 80%, 다빈치가 20%를 그린 작품”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여전히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탁월한 연대기 작가라는 평을 듣는 로스 킹의 저작 ‘다빈치와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를 연 이 작품이 어떻게 완성됐는지를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생생하게 그려 낸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당시에도 “그 전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홍수와 같이 예술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대를 앞선 양식과 전무후무한 독창성은 ‘기적적 작품’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명성만큼이나 이 그림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저자는 다빈치가 그린 수많은 습작과 노트의 메모를 연구하고 방대한 참고 문헌을 샅샅이 뒤져 ‘최후의 만찬’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과 비밀에 대해 신빙성 있는 추론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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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많은 인물과 다양한 동작들을 연구하고 스케치했다.
다빈치가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495년 초부터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셋. 밀라노 ‘공작의 화가이자 공학자’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 할 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생각이 많고, 산만한 작업 방식에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작품 의뢰를 받아도 제대로 완성을 하지 못한다는 오명마저 안고 있었다. 높이 4.5m, 너비 9m에 달하는 커다란 그림은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었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프레스코화에도 전혀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을 행하고 싶다”고 수없이 공책에 적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예술가는 10년간의 연구와 치밀한 준비를 거쳐 작업 시작 3년 만에 작품을 완성한다. 킹은 치밀하게 그림 속으로 파고들어 그림에 숨겨진 비밀들을 풀어 나간다.
우선 예수를 중심으로 양 옆에 앉아 있는 열두 명의 인물이 누구인지,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 누구였는지를 추적한다.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사도 요한에 대한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댄 브라운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옆자리에 앉은 이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 마리아 막달레나였다는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킹은 다양한 문헌에서 근거를 찾아 이런 그럴듯한 주장이 흥밋거리에 불과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을 밝힌다. 킹은 다빈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적 아름다움은 곱슬머리에 이목구비가 여성적인 청년이나 사춘기 소년, 심지어 사춘기 이전의 소년이었다면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옆자리에 앉은 ‘요한’은 여성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중성적 인물을 신비스럽게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다빈치는 ‘암굴의 성모’에서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 우리엘이나 후기 그림에 속하는 ‘세례자 요한’ 속의 인물, 그 유명한 ‘모나리자’에서 보듯이 성별의 차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표현을 아꼈다.
다빈치의 천재성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인물의 역동적인 동작과 상황의 묘사력이다. 그림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다빈치는 몸짓과 손짓, 미묘한 속임수와 암시를 통해 예루살렘의 어느 방에서 펼쳐진 역사적 사건을 절묘하게 짜맞추었다. 예수는 방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했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제자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양하고 독특하며 진정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얼굴을 그리고 싶었던 다빈치는 수도 없이 많은 스케치를 그리며 고심했다. 심지어 사악한 성품이 드러나는 유다에 적합한 얼굴을 찾기 위해 일년이 넘게 밀라노 외곽의 빈민가 보르게토 마을을 찾았다.
그림 속 유다는 치켜올라간 눈썹에 매부리코, 기다란 턱에 하악골이 각진 노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빈치는 유다가 빵을 집으려고 왼손을 뻗다가 소금통을 엎지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왼손잡이는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라는 부정적인 문화적 연관성을 함축하고 소금통을 엎는 것은 불길함을 의미했다.
예수의 얼굴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 그의 공책에는 예수의 모델로 고려했음직한 사람들의 이름이 몇 개 적혀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몽환적이고 여성의 이목구비를 지닌 요한과 필립보의 모델이 다빈치의 양자인 살라이라는 설도 있지만 역시 확인할 수 없다.
다빈치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어떤 사람은 “만찬 속 제자들은 밀라노 궁정의 저명한 대신들과 시민들의 삶을 그린 초상화”라고 적었다. 후대의 우리는 그저 짐작만을 하면서 천재에게 감사할 뿐이다./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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