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의 여왕’ 브라이트먼... 환갑 넘어도 황홀한 고음은 여전
6년 만의 내한... ‘오페라의 유령’ 등 23곡 열창
“한 해의 가장 축제 같은 시기에, 더 이상 우리 곁에 함께하지 못 하게 된 친구들과
우리가 사랑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3일 오후 7시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 세계적인 팝페라 여왕
세라 브라이트먼(62)의 말과 함께 잔잔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됐다.
3000여 객석의 청중이 눈을 감고 영롱한 브라이트먼의 미성이 읊는 가사에 귀를 귀울였다.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Dona eis requiem, Sempiternam)”.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이자 브라이트먼의
전 남편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쓴 진혼곡(레퀴엠), ‘피에 예수(Pie Jesu)’였다.
약 2시간 동안 총 23곡을 선보인 이날 공연의 원래 주제는 ‘크리스마스 심포니’.
‘아베마리아’로 공연 첫문을 연 브라이트먼은 “지난 몇 년간은 우리 중 많은
이에게 험난했다(Challenging)”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담은 사랑과 위로의
노래를 축제 기간에 던져보고 싶었다”며 공연 주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만큼 직접 핸드벨을 들고 ‘캐럴 오브 더 벨스’를 연주하거나, 손을 치켜들고
오르골 상자 속 인형처럼 무대 위를 돌며 ‘사일런트 나이트’를 부르는 등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선곡들을 주로 선보였다.
하지만 이날 ‘피에 예수’만큼은 6년 만에 한국을 찾으며 특별한 대상을 위한
진혼곡으로 선보였다. 공연 전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브라이트먼은
“한국을 위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번 참사를 겪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 분들과 부상자,
모든 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라틴어로 ‘자비로운 주님’이란
뜻인 ‘피에 예수’는 앤드루가 작고한 부친을 위해 쓴 곡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공연 중간 한국 관중을 “가족(Family audience)”이라 칭하며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4·2009·2010·2013·2016년에 이어
벌써 여섯 번째 내한. 이탈리아 출신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만든 곡에 가사를 붙여 불러 세계적 사랑을 받은 ‘넬라 판타지아’는
“특히 여기 한국에서 많이 사랑받았다. 감사하다”며 불렀고,
공연 중간임에도 노래 직후 3분가량 긴 박수를 받았다.
브라이트먼은 그간 1997년 이후 2018년까지 발매한 7장의 앨범 모두를 빌보드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앨범 차트 1위에 올렸다. 지금까지 그가 팔아치운 음반만 1200만장.
그럼에도 공연 전 본지에 “하루 두 시간은 늘 노래하고, 목소리를 듣고 돌보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지난 2년간 영국에서 노래 코치와 격리 기간을 보냈고 보컬 연습을 하며 팬데믹
기간을 긍정적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이날 공연
내내 3옥타브가 넘는 고음역대를 힘 있는 미성으로 흔들림 없이 뽑아내며
여전히 건재한 목소리를 과시했다. 특히 자신이 1986년 런던 초연 당시
여주인공으로 섰고, 세계적으로 히트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곡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를 선보일 땐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고음을
완벽히 소화했다. 객석에선 “소름 돋는다”란 탄성이 터졌다.
가장 압권은 그가 안드레아 보첼리와 불러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마지막 곡으로 관객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
그의 소리가 고음으로 치달을수록 무대 조명이 객석 1층 앞자리부터
2층 뒷자리까지 차례로 훑었다.
마치 일출 시 땅 위로 광명이 비추는 장면과도 같았다.
이를 황홀하게 지켜보던 관중은 곡이 끝나자마자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 모습에 브라이트먼이 공연 전 본지에 “즐길 수 있는 가수, (관객을)
새로운 세상으로 순간이동시켜 주는 가수로 불리고 싶다”며 전한 말이
겹쳐 보였다.“뮤지컬, 오페라, 연극, 콘서트를 보러 갈 때
저는 그 속으로 순간이동되고 싶어요. 관객들도 마찬가지죠.
음악은 인간을 위한 음식과도 같고, 우리는 음악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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